어릴 적에 한참 팬케이크를 만들어 먹는 것에 재미를 붙인 적이 있습니다.


팬케이크 파우더 가루를 마트에서 사와 계란과 우유를 넣어 반죽을 만들고, 후라이팬에 반죽을 부어 노릇노릇 익혀 팬케이크를 만들었는데요. 이렇게 크게 한 판 팬케이크를 만들어 먹는 동안에는 어린 시절 그 나름의 고민과 근심은 모두 잊을 정도로 즐거웠습니다.


어느 날 한 번은 팬케이크를 만들다 망친 적이 있었습니다. 어쩌다 망쳤는지 지금은 잘 생각나진 않지만, 제 기억으로는 팬케이크 밑은 새카맣게 타고, 윗면은 하나도 익지 않은 형태였는데요. 다급한 마음에 전자렌지에도 돌려보고, 여러 차례 후라이팬에 올리고 뒤집고 하며 팬케이크 상태를 정상으로 만들려고 애썼지만, 결국 팬케이크의 모양은 흉측하게 변하더니 나중에는 말 그대로 '개떡'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개떡이 된 팬케이크를 보며 한참을 웃었는데요. 그 때의 충격에서였는지 그 이후는 팬케이크를 만들어 먹은 적이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또 지내오는 동안 팬케이크를 먹어 볼 기회도 많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동네를 지나가다 커피와 함께 팬케이크를 같이 판매하고 있는 카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낙성대 카페 'Felicita'인데요. 한번은 가봐야지 하면서도 늘 다른 일에 우선순위가 밀려 좀 처럼 시간 내기가 어렵더라구요. 하지만 오늘 같이 날씨도 우울하고 꿀꿀한 날, 한 주간 여러 일에 치여 탈진한 나를 달래기도 할 겸, 또 카페에 가서 이것저것 생각도 정리할 겸 오늘은 이 곳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짜잔, 팬케이크에요)



잘 구워진 팬케이크 위에 시럽을 뿌리고, 팬케이크 조각을 크림에 찍어먹으니 심장이 쿵쾅거리고 엔돌핀이 도는 기분이었습니다. 팬케이크가 달기 때문에 커피는 진한 아메리카노로 주문했는데 정말 완벽한 궁합이었습니다.


비록 돈을 주고 사먹는 것이지만, 누군가 시간을 들여 정성스레 만들어 준 팬케잌을 먹게 되니, 예전에 스스로 팬케잌을 만들어 먹었을 때와 또 다른 기분이었습니다. 비가 온 후 쌀살해진 이 주말에 밀려오는 여러 종류의 고민들을 이 팬케이크를 통해 잠시나마 내려놓는 기분입니다.



저의 집에는 아직도 설거지 거리와 빨래거리, 버려야할 물건들, 읽어야 할 책들, 수많은 과제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지만ㅎㅎ 잠시 이 카페로 도피한 저는 스스로에게 '오늘은 진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 그냥 푹 쉬어'라고 안심시키고 위로합니다. 


생각을 정리하러 왔지만, 이 팬케이프 앞에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주말입니다.



Enjoy your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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